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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바람친 다음날
                이예경
                 2012. 8. 1. 07:33
              
                          
            비바람친 다음날
등산 가는 날인데 비가 온다
아침에도 어두운 하늘, 그리고 젖은 땅
갈까 말까 하다 우산 쓰고 집을 나선다
산길 입구 시냇물이 좔좔좔
간밤의 소식을 아느냐고 아우성이다 호들갑이다
그래, 알지. 비바람과 시냇물이 만났겠지
조용하던 산이 살아났다. 아니 물이 살아났다
징검다리는 아예 없어졌다
산길은 싸움터 그 자체다
어린 밤송이가 숱하게 나딩굴고
잔가지가 땅에 떨어져 나뭇잎들이 낭자하다
고목나무 등걸은 뿌리째 뽑힌채
길을 가로질러 누워있다
나무들은 조용히 젖어있다
벌레소리 새소리는 어디로 갔는가
뻐꾸기는 어디로 갔을까
산을 떠나지는 않았을 터인데
비바람이 무서워 어디로 숨은 것일까
그저 휘익휘익 바람소리만 들린다
눈을 들어 하늘을 본다
그런데 땅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다
여전히 주렁주렁 달려있는 튼실한 밤송이들
여전히 시퍼렇게 우거진 나무들의 숲
여전히 매달려 있는 청순한 꽃들
그럼 비바람은 정원사였나?
약한 가지는 잘라내고 벌레먹은 잎사귀를 정리하고
병든 고목나무는 벌레들에게 주라하고
온 산을 물청소까지 깨끗하게 해치웠다
지구는 아무렇지도 않게 돌아가고 있다
그래, 가지치기를 잘해야 초목이 정리가 되지
내 집도 마찬가지야. 대청소가 필요해
안쓰는 건버리고 해묵은 것들을 정리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