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 수필

자동차와 운전7~

이예경 2012. 3. 13. 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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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면허를 얻은 8월이 내가 백화점에서 다시 일을 시작하고 싶어하던 때였다

내가 일을 관두면서 대타로 한국부인을 소개했었는데

가발가게가 잘되는걸 보고 그 부부가 다른 곳에 사업을 시작한거였다

그래서 내가 일하던 곳이 비게 되어 다시 일해달라는 제의가 들어왔다

 

형부는 애기를 맡기고 다녀야하니 급료를 올려주면 하고 아님 말라고 했다

가게 주인은 남부 일대에 가발가게를 20여개 가지고 있었고 여기저기 다니며 관리를 했는데 돈을 무지 잘벌고 있었다.

주인이 사람 구하기 힘들었는지 내가 원하는 조건으로 수락하였다

 

그런데 아기를 맡겨야 한다

몇군데 돌아보았는데 음악 틀어놓고 아기들이 무표정하게 기계처럼 율동을 하고 있었고

시설은 좋아도 일하는 보모들의 표정이 완전 무표정이었다

그런데 아이를 맡길 수는 없고 속상해서 저녁내 아기를 붙잡고 펑펑 울었다

 

그러다가 결국 한국노부부가 사는 집에 얘기해서 아기를 맡기기로 하였다

그 부부는 3남1녀를 키웠는데 아들 셋과 사위가 모두 박사이고

할아버지는 정동교회 장로님, 할머니는 권사였고 인품과 덕망이 있는 분들이었는데

그분 댁이 너무 멀었다. 내집에서 16마일 떨어져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제일 믿음직해서 모든 조건을 감수하기로 했다

 

아침마다 셋이 같이 집을 나서면 우선 1마일 떨어진 학교에 형부를 내려주고

8 마일 가서 아기를 한국할머니한테 내려놓고

다시 8마일 달려  내직장에 와서 종일 주차해 놓았다

일 끝나면 할머니댁에 가서 애기 데리고 형부학교앞에서 태워 집으로 오는

일과가 시작되었다 그러니까 매일 왕복 36마일을 달리며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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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허따고 바로 다음날부터 고속도로 운전을 시작하게 되었다

길을 익히기위해 형부가 옆자리에 앉아 사흘간 안내를 해주더니

나흘째 부터는 조수석에 카시트를 장착하고 애기를 앉힌다음

내가 운전석에 앉고 형부는 뒷좌석에 앉았다.

혼자 운전한다고 생각하라 하더니 내가 말을 걸어도 정말로 없는 듯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러더니 다음주부터  날더러 혼자 가라하더니 자기는 학교앞에서 내려버렸다

나는 애기랑 둘이서 동네 길에서 고속도로로 그리고 한적한 시골길로해서

매일 그렇게 할머니댁에 아기를 맡기고 왕복 36마일을 다니며 일을 했다

 

단, 금요일에는 백화점이 평일과 다르게 6시에 끝나지 않고 7시반에 문을 닫아서

그날만 형부가 애기를 데려오고 저녁을 차려놓은 뒤에 나를 데리러 와주었다

 

하루는 애기를 데리러 할머니댁에 갔는데 똥냄새가 나는 거였다

나는 부랴부랴 기저귀를 갈아주고 씻기고 하다보니 15분정도 시간이 지체되었다

학교앞에서 시간 맞춰 기다릴 애아빠 생각에 부지런히 운전해서 왔다

 

학교앞 거의 다와서 우회전을 하니 아빠를 보고 애기가

평소와 같이 손뼉을 치며 펄쩍펄쩍 뛰면서 좋아했다

그런데 아빠 앞에 차를 딱 멈추었더니 문이 벌컥 열리더니

갑자기 천둥소리가 우르릉뚱땅 났다

"아니 뭐하다가 지금 오는거야" 뭐 그런 말이었을듯 싶다

애아빠가 얼굴이 흙빛으로 변해서 무서운 얼굴로 고함을 친 거였다

 

애기가 놀래서 으앙! 울음을 터뜨리고 나는 깜짝 놀라 말도 안나왔다

트래픽잼을 뚫고 똥싸개 딸 씻겨서 늦게라도 와준게 고맙지

애썼다는 말 한마디 없고 도리어 화를 내다니...어이없다

순간 입을 꼭 다물었지만 눈앞이 흐려지고 눈물이 줄줄 흘러 차에서 내려버렸다

 

그는 나중에 말하기를 시가에 차가 나타나지않으니

기다리는 동안에 책을 몇권 쓸 정도로 별별상상을 다했다고 했다

남의집 귀한 딸을 미국까지 데려와 고생만 시키다가 잃었구나

몇달 안된 애기까지.....미칠것 같더란다

 

이역만리에서 의지할 데 없이 살던 시절의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