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 수필

자동차와 운전1-6

이예경 2012. 3. 13. 00:41

 

내가 처음 미국에 갔을때 며칠 후 동네 한국인 모임에 갔더니

부인들이 내게 신랑이 뭐사놓고 기다리더냐고 물었다.

얼핏 생각이 안나서 꾸물거리고 있는데 자기들 얘기를 했다.

초코렛을 사놓았더라 바나나를 몇둥치나 사놓았더라 기분이 좋았더라고 했다

 

나는 그제서야 생각났는데 형부가 지도를 사놓았던거 같다.

외출전에 지도를 보여주었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다시 지도를 펼쳐놓고

다녀온 곳을 볼펜으로 같이 짚어보던 생각이 난다.

그러면서 내게 빨리 운전을 배워야하고 차도 사야한다고 그랬다.

 

나는 70년 초에 한국에서 주로 걸어다니거나 버스를 타는 정도로 택시도 자주 타본적이 없었는데

내가 갑자기 운전도 해야하고 차를 사야된다고 생각하니 웬지 어울리는 일 같지 않았고

슬그머니 겁도 나서 과연 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그러나 매번 지도를 보며 지리를 익히고 차없는 사람이 나밖에 없고

어딜 가던지 매번 이웃들의 신세를 져야만 하니 미안해서라도 차를 사기는 사야할 것 같았다

 

그래서 일단 운전을 배우기로 했다.

운전학원은 교습비가 비싸서 수소문을 하니 마침 5분 거리의 고등학교에서

저녁에 어른들을 위한 무료 운전 강습이 있다해서 등록을 하였다.

3개월코스인데 이론과 실습을 겸해 가르친다고 했다.

 

매일 지나다녀도 들어가 본 적은 없었는데 교실에 들어가보니 이미 삼십여명의 어른들이 가득 앉아있었다.

반이상이 유색인종 들인데 자기들끼리 활발하게 이야기를 하고 있다가

배가 나오고 안경쓴 흑인 강사가 들어오니 조용해졌다.

학생들에게 두께가 5센치쯤 되는 두꺼운 교과서를 나눠준 뒤 강의가 시작되었다.

 

2

강의 내용은 자동차 기계에 대한 내용이었는데 하루에 50~60페이지를  읽어가야했다

 한국어 책도 많은 양인데 영어로 된 자동차공학적인 내용을 읽어가야하니 고역이었다

종일 붙잡고 있다가 끝판에는 대충 넘어갈 수 밖에 없고 힘들었지만 면허는 따야하니 그만 둘 수도 없다

사설 운전학원에선 40분 수강료가 12불인데 여기선 3달 수강료가 10불이니 비교가 안된다

 

두달 만에 두꺼운 책을 2권을 떼고 나니 동영상을 보여주었다

처음 한두번은 규칙이라던가 기본적인 내용이었으나 다음에는 어떻게 해서 교통사고가 났는지

실제의 처참한 실수하는 과정과 처참한 사고현장을 음향효과와 함께 보여주었다

귀가 멍멍할 정도로 소음 속에서 동영상을 보고 오면 머리가 멍멍할 정도였다

 

그 난리 속에서도 강사는 쿨쿨 잠도 잘 잤다

동영상이 끝나도 계속 코를 골며 잘 때는 아줌마들이 일제히  

"Wake up Mr. Smith"하소 소리쳤고 곧 이어 웃음바다가 되었다

키는 작고 배가 나온 번들번들한 얼굴에 검은테 안경을 쓴 흑인 강사는

목소리가 크고 남쪽 사투리가 섞인 억양으로 강의를 했고

학생들은 툭하면 잡담을 하며 강사를 놀려대기도 했다

 

학생들은 주로 뚱뚱한 식당아줌마 스타일이 었던 것 같다

나이든 아줌마들도 있었는데 외향적인 사람들이 많아 시끌시끌했다

강의가 끝나면 다른 이들은 누가 데리러 와서 금방 흩어졌고

나는 집이 가까운지라 가로등이 환한 길을 따라 콧노래를 부르며 걸어서 귀가하였다

 

나는 그때 일자리를 찾느라 낮에는 일간신문을 뒤지며 전화를 해보곤 했다

무슨 일을 할 수 있는지도 모르고 광고에서 그냥 이것저것 찾아서 그럴사한 곳에

전화를 해보았지만 오라는 곳은 없었다

그리고 저녁에는 주 2회 운전면허 공부를 하러 다녔는데

지금 생각하면 좀 막막한 상황이었던것 같은데 내성격이  워낙 태평스런 덕에

뭔지도 모르고 걱정도 안하고 그냥 지냈던 것 같다

 

3

그런 속에서 참한 아가씨 한 명과 알게 되었다

만날 때마다 반갑게 인사를 건네고 내가 뭐든 물어보면 찬찬이 설명을 해주었다

자그마한 키에 어깨까지 생머리를 치렁치렁 늘어뜨린 착한 인상의 아가씨는

어느날 내게 집에 가는 길에 태워다 주겠다고 했다

나는 그럴필요 없다고 손사래를 쳤지만 그녀의 눈에는 내가 불쌍하게 보였나보다

 

하여튼 그녀를 따라 주차장에 가서 그집 남편이 운전하는 차를 얻어 타게 되었다

그런데 차를 내리면서 보니까 그 남편은 난쟁이 인것 같았다

천사같은 착한 얼굴과 어깨와 손은 보통 사이즈인데 키가 부인보다 작은게 아닌가

어쨌던 그들은 그뒤 한달간 실습하기 전까지 나를 태워다 주었다

나도 그들이 사는 숲속 집에 가본 적이 있는데 트레일러 집이었다

트럭토막같은 그런 집에 처음 구경을 가봤다 오밀조밀 차려놓고 없는게 없어보였다

 

4

두달간 이론을 마치고 실습에 들어갔다

커다란 승용차(매브릭?)에 앞쪽 양쪽 좌석에 운전대가 있어 오른족에는 뚱보강사가 앉고

나는 왼쪽 핸들을 잡고 앉았다. 안전 장치가 달린 자동차임을 확인하고

나는 처음에는 믿거라 하고 멋대로 핸들과 악셀을 이리저리 움직여 보았다

그런데 어찌나 핸들이 예민한지 조금만 돌려도 이리 휙 저리휙 지그재그로 달리니

강사가 정신없어 힘들어하며 어쩔 줄을 몰랐다. 생각보다 어려웠다.

내가 워낙 운동신경이 없고 감이 떨어지는 사람이라 운전이 잘 되지 않는것 같다.

한달이 지나도 잘 안되니 운전하는게 너무 지겹기만 했다

그러다가 3개월이 후딱 지나가버리고 면허도 못땄다

 

당시에 내가 대책도 없이 입덧을 심하게 하고 있었고

취직은 해야되서 매일 신문광고를 뒤적거리던 참이었는데

드디어 시내 한복판에 있는 백화점 가발가게에 점원으로 취직이 되었기에

운전면허 따는 것은 더이상 진도가 못나갔다

 

형부는 내가 아기를 가지고 일까지 하고 있으니 자기가 먼저 면허를 따야겠다고

서둘러 운전학원에 등록을 했다 7월부터 연습시작, 보통은 10번 정도 연수받고야

면허시험을 본다는데 그는 돈이 아깝다며 6번 연수받고서 시험을 보겠다고 우겼다

물론 떨어졌고 두번 연수를 더 받고 재시험을 보았지만 또 낙방

결국 세번째에 가까스로 붙었다. 운전강사는 제발 조심하라 이르면서

추수감사절 선물이라고 하더란다 11월 22일에 면허증을 받아들었다

 

5

나는 5월부터 12월 23일까지 8개월간 벌은 돈으로 자동차를 살 수 있었다

12월 4일 중고자동차 시장에 가서 5년된 파랑색 폭스바겐비틀을 450불을 주었다

애기 예정일이 12월 26일이라서 그전에 차를 살 수 있어 다행이었다

해산비는 490불 들었고 남는 돈은 비상금으로 두기로 했다.

 

그런데 1월4일에 애기를 낳고 4박5일만에 집에 온 날에 몇십년만에 눈이 많이 왔다

아기 우유가 충분치 않아 깜짝 놀랬는데 운전해서 나가야하지만

길에 순경들이 지키고 서서 자동차를 못다니게 하는 거였다

눈을 치우는 장치가 없어서 위험하다는 거였다

 

눈이 금방 안녹아 형부는 걸어가서 우유를 사왔고

한시간 걸려 걸어서 학교에 다녀왔다

대만에서 온 학생들은 눈을 처음 본다고 사진기를 들고 다니며 흥분했다

 

형부는 운전면허를 딴 후 목숨을 걸고 운전하는 거라며

시속 25마일 이상으로는 절대 안달렸다

아주 느릿느릿 느려터지도록 천천이 달리는 거였다

조금 밟았다 하면 30마일이 고작이고 절대 그이상의 속도를 내지 않았다

 

6

애기 낳은지 2개월이 되었을 때 내가 멀쩡하게 회복된거같이 보이자

형부가 운전을 가르쳐주겠다고 했다

자기가 비싼돈 내고 배운건데 나라도 교습비를 절약해야되지 않겠느냐고 했다

그러면서 조용히 연습해서 면허를 따고난 뒤에 차를 몰고 나타났을때

이웃들이 놀라는 모습을 상상하며 씩씩하고 패기있게 앞장을 서서 나갔다

 

아기는 아주 잘먹고 잘자고 아주 순하고 건강했다

한번 잠들면 한두시간씩 곤하게 잘 자니까 애기가 잠들자마자 우리는 후다닥 나가서 운전을 하고왔다

혹 무슨 일이 생길까봐 불안한 마음은 있었지만 애기는 뒤집지도 못하고 침대에서 나올 수가 없으니

고작해야 깨서 울 뿐이지 별일이야 있겠나 싶었다

 

몇번은 별일 없었지만 아무래도 불안해서 형부가 애기를 안고 조수석에 앉아서 운전을 코치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운전면허 딴지 고작 3개월된 초보운전자가 운전을 가르치겠다는거니 말도 안되지만

유학생부부로 살던 우리는 한푼이라도 절양하려는 마음에서 매우 진지한 분위기였다

그래도 미국에선 운전을 해야 살 수 있으니 빨리 적응하려는 일념 뿐이었다

나도 애기엄마가 되고보니 철부지 때를 약간 벗은 기분이기도 했다

 

하여튼 진지하게 운전대를 잡은 시작은 좋았다

그러나 운전이 어디 그렇게 쉬운가

어떤날엔 잘 가다가 기술이 높아지면서 겁이나서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형부도 겁이 났는지 자동차가 아무데로나 막 가면 급한김에 소리를 꽥 질렀다

기차 화통을 몇개는 구워먹은 고함소리에 애기가 놀라 울어대고 나는 자존심이 상했다

 

귀가길에는 서로 딴데보고 걷다가 집에 들어와선 한동안 말을 안했다

미국 간지 13개월 만이니 신혼시절인데 좋게만 지내다가

소리를 지르는걸보니 오만정이 다 떨어졌고 꼴도 보기 싫어졌다

형부는  공은 공이고 사는 사라고 운전가르칠때와 집에서와는 다르다며

자꾸만 말을 걸어왔지만 나는 돌아앉아 대답도 안했다

 

이웃집 학생부부가 놀러왔다

미국에선 부부간에 운전 가르치다 이혼하는 일이 흔하다며

운전학원에 당장 등록을 하라고 했지만 우린 한 푼이 급해서 그럴 수는 없었다

 

그러면서도 운전 연습은 이어졌고 어느정도 한다싶었는지 내게 시험을 보라고 했다.

학원에 등록하여 연수를 한번 받고 학원차를 타고 시험을 보는게 좋다고 해서

그대로 했지만 결국 3번 만에 붙었다

 

일단 면허증이 손에 들어오니 지나간 일은 모두 깨끗이 잊었다

몇번째로 붙었다고 어디 써있는 것도 아니고 운전만 하면 되는 거쟈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