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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복지관 실습

이예경 2012. 2. 26. 02:26

드디어 실습을 마치고 소감문을 쓰게 되었으니 가슴을 쓸어내리게 된다. 원하던 실습을 집에서 가까운 과천시노인복지관에서 하게 되었기에 참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곳은 내가 “웰다잉 행복한 마무리” 강좌 수강을 위해 작년에 회원으로 등록하여 공부했고, 노인일자리에 참여하여 노후생활설계사로 상담실에서 일하기도 했던 곳이지만 나이 때문에 실습생으로 받아주지 않을까봐 걱정을 많이 했기 때문이다.

 

첫날 관장님께 인사를 드렸는데 할머니 학생이 끼어있는걸 보고 관심을 보이셨다. 왠지 내가 노인의 대표로 대접받는 느낌이라 좋은 뽄을 보여야겠다는 각오가 생겼다. 실습지도자 과장님(남39세)이 건물과 직원들 소개를 위하여 함께 건물을 라운딩 하였는데 신관, 구관의 층계를 날쌔게 뛰어다니는 장정들 -실습생1(남31세), 실습생2(남26세) - 과 보조를 맞추느라 땀나게 따라다녀선지 매우 고단했다. 그러나 다음날부터 고단했던 것에는 비할 바가 아니었다.

 

지하1층에 실습생들의 동아리 방을 정해주어 둘째 날부터는 그곳에서 머물며 부서의 담당과장님이나 팀장님들이 매시간 내려와서 실습생들에게 일의 내용을 설명해주었다. 모두가 훌륭했고 질문에 친절히 답을 해주셨다. 나는 이미 학교에서 13과목의 사회복지 전공 필수 공부를 마쳤고, 클라이언트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뭐든지 도와주려는 의지가 충만한 상태로 실습에 임하였기에 어려울 것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일의 실제를 배워갈수록 실제 현장은 이론에 비할 바 없이 훨씬 어려운 것임을 알았다. 학교에서 배우지도 않고 예기치 못했던 여러 가지 일들에 매번 부딪치고 현장에서 해결해야하니 생각도 못해본 일이다. 이론과 마음과 의지만으로 현장에서 부딪치는 일들을 해결하기에는 내 자신이 역부족이었다.

17억 복지관 지출의 예산을 세워보라 할 때는 호봉에 따른 봉급 계산, 그리고 여러 가지 사업계획을 세워 지출을 해도 해도 8억을 겨우 넘어서 밤새 고민했다. 실버인력뱅크의 시장형 취업 일자리 중 창업 제안서를 과제로 받아들고, 무공해 기저귀세탁 배달사업을 해볼까, 밑반찬 사업을 해볼까, 복지관 어르신들이 솜씨 있게 제작하신 수공예품 매장을 차려볼까 골똘하게 생각해보기도 했다. 심신이 바쁜데 실력이 안 되니 머리에 쥐가 날 지경이었다.

노인들이 필요이상으로 두서없이 말씀을 많이 하실 때는 계속 들어 주는 일이 피곤했고, 재가복지 일로 도시락 배달을 갔을 때 클라이언트의 지하방을 방문하면 냄새가 독해서 숨 쉬는 게 힘들었고, 일방통행의 좁은 골목에 차를 세우고 도시락 배달을 하는 동안 뒤차가 와서 빵빵거리며 낯을 찡그릴 때엔 당황했다.

 

자원봉사 실습으로 장애인 시설에 가서 지적장애인 학생들과 운동을 같이 하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장애인이라면 신체기능이 어렵고 말도 잘 못하는 사람들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외모가 반듯하고 건강하고 귀태가 흐르고 말도 잘하고 훌륭해서 얼핏 봐서는 장애인 같지 않았다. 이야기를 나누며 지적장애인임을 알게 되었고 보면 볼수록 그들 부모님들 입장이 되어 눈물이 났다. 그러나 정작 장애인 자신들은 명랑하고 착하고 너무나 아름다운 모습이라 더 감동받았고 자기중심적 생각을 해온 내 자신을 반성하면서 도리어 배운 점이 많다.

 

사회교육 실습으로 70대 노인들에게 한글을 깨우쳐주는 반에 들어갔다. 그 나이까지 문맹으로 살아왔는데 인생의 중요한 시기가 다 지난 이제서 한글을 배운다고 뭐가 달라질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직접 대하고 보니 그들의 학습 진도가 어렵게 진행되는 것을 보고 의문이 더 깊어졌다. 그런데 나중에 그들이 배움에 한이 맺혀 일생을 살았기에 한풀이가 첫째 이유라고 해서 한풀이인 동시에 자기실현의 욕구충족인걸 알았다. 어릴 적에 남들이 학교에 다닐 때 그렇게 못했던 것은 그들의 잘못 이전에 환경적으로 뭔가 고단한 삶이었을 것이다.

 

사회교육 프로그램 계획서 과제로는 자서전 쓰기를 계획했는데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며칠 끄적거려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내 머릿속에 든 게 별로 없으니 책을 사보고 몇날며칠을 인터넷을 검색하고 초안을 만들어 과장님께 보여드렸더니 고칠 점이 많아서 머리를 쥐어짜 다시 작성했다. 그런데 프로그램을 만든 배경, 목적, 목표, 하위목표, 그리고 기대효과, 평가 등의 틀에 맞춰 일일이 글을 지어 작성하려니 쉬운 일이 아니었다.

 

홍보를 위해 보도자료 작성하는 법의 실습도 마찬가지였다. 내용에 제대로 들어갈 것을 챙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문장력이 있어 독자를 끄는 힘이 함께 있어야하니 그것도 이론과 사랑과 의지만으로 하루아침에 될 일이 전혀 아니었다. 사회복지사가 해야 하는 일은 도대체 어디까지인가 많기도 하다

 

타기관 견학으로 의왕시노인복지관을 다녀왔다. 기관방문 분석 보고서를 집에 와서 쓰려하니 견학 가서 본 것들이 머릿속에 파노라마같이 지나가 말로하면 전달이 쉽겠으나 일일이 표현하고 글로 정리해서 써야하니 시간이 많이 걸렸다. 여기에도 복지관의 설립배경, 목적, 목표, 하위목표, 그리고 기대효과, 평가 등의 틀에 맞춰 세세하게 내용을 작성하려니 여러 날이 걸렸다. 차라리 수필쓰기가 훨씬 쉽다는 생각이 들 정도 였다.

 

사회복지사의 일이란 후원금도 끌어와야 하고 기본적인 복지사의 강령 준수 외에 낮에는 몸으로 뛰며 사회복지의 전반적인 일을 해야 하고, 매번 일지니 계획서니 문서작성을 잘 해야 정리가 끝나고, 어떤 일이든지 닥치는 대로 모두 해결해서 궁극적으로 클라이언트들에게 만족을 주어야하니 팔방미인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종합예술가의 일인 것 같다. 현장에서 말없이 뛰고 있는 사회복지사들의 노고를 알고 보니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실습 중간에 이렇게 여러 가지를 하다 보니 날이 갈수록 자신감이 떨어져 한숨이 나왔다. 다른 실습생에게도 물으니 자기들도 마찬가지라 해서 잠시 위안이 되었다. 전문 과목의 노트필기는 받아 적으니 쉽지만 일지나 과제물, 등의 작성은 생각을 축약하느라 어려웠다. 겨우 작성해서 다시 읽어보면 고칠 점이 자꾸만 보여서 글이 쉽게 끝나지 않아 시간이 많이 걸렸다. 그런데 팀장님에게 일지작성에 드는 시간을 물었더니 5~10분 정도 걸린다고 해서 놀라웠다. 숙련되면 그럴 수 있나보다.

 

실습기간에 나는 거의 매일 밤을 새웠고 특히 중간평가서 작성 할 때는 지난 일지와 관찰기록을 다시 읽어보고 당시의 정황을 떠올리며 나 자신의 역할을 평가해보느라 본의 아니게 밤을 꼴깍 새웠다. 한숨도 못 잔 상태로 출근해서 보통 때와 다름없이 일하고 오후에 발표를 했는데 담당과장님과 팀장님들의 신랄한 비판에 실습생 모두가 사기를 잃었다. 실습지도 과장님도 얼굴빛이 좋지 않았다.

 

하도 엄한 질책에 충격을 받아 실습생 모두는 다시 기운을 차리는데 시간이 걸렸다. 그렇지만 나중에 생각해보니 덕분에 나머지 실습기간에는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생각을 많이 하면서 긴장해서 일에 임했던 것 같다. 종결평가서 작성 시에도 시간이 모자라서 또 밤새도록 붙잡고 있었지만 어렵지는 않았고 그런대로 성과를 거둔 점이 있다. 어쨌든 실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확실히 알았으니 앞으로 계속 노력을 할 것이다.

 

심화학습은 실버인력뱅크에서 했는데 노인들을 공경하고 따뜻하게 대접해드리는 일보다 일자리를 챙겨서 마련해드리는 것이 더 큰 효도임을 알았다. 노인들의 열망이 대단했고 소일거리에 대한 의지가 대단했다. 그것이 몸과 마음을 젊게 사는 것이기도 함을 알았다. 세상에 쉬운 일이 하나도 없다.

 

그래도 시간이 가니 실습의 종결평가서 발표를 끝으로 매일 출근하던 일은 끝났다. 이제는 과제물을 정리하고 책을 묶을 단계가 되어 만감이 교차한다. 남들은 나이 들어 국내로 해외로 여행을 다니며 새로운 것을 배웠다고들 하는데, 나는 사회복지사의 세계를 여행하고 실습까지 해보았으니 더 알찬 여행을 한 셈이다. 사회복지사 실습과 더불어 노후 인생실습까지 한 것 같다.

 

이제는 가정이나 사회에서나 무슨 일을 하던지 시작하기 전에 반드시 그 일의 배경, 목적, 목표, 하위목표, 그리고 기대효과, 평가 등의 틀에 맞춰 일일이 생각해보고 계획서 작성부터 해본 후에 일을 해보려고 한다. 여태까지 뭔가 나 자신보다는 남의 계획에 보조 역할을 하며 살아온 게 아니었나? 반성도 해본다.

 

젊어서는 아이 셋을 키우고 살림을 하며 바쁘게 지내느라 바빴고 아이들이 결혼 후에는 요양병원에 계신 아버님을 면회 다니면서 집에서는 중풍 후유증으로 거동이 불편한 시어머님을 7년째 모시느라 분주해서 나 자신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노인들이 젊었을 때와 너무 다르게 보여 노인복지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 또한 사실이다. 힘들게 공부한 사회복지사의 길이 부디 빛날 일이 있기를 기도하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