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방

살바도르 달리

이예경 2009. 7. 28. 01:10

살바도르 달리
(Salvador Domingo Felipe Dali, 1904 - 1989)

직업: 초현실주의 서양화가
국적: 스페인
출생지: 스페인 에스파냐 피게라스



익살스런 콧수염이 인상적인 스페인 초 현실주의의 대가인
살바도르 달리, 전방위 예술가,
광기와 모순과 신경증을
예술로 승화시킨 미치광이,
삶이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 작품이었던
20세기 최고의 예술가입니다.

의식의 세계를 다루던 기존의 미술에서
무의식의 세계를 최초로 회화에 도입한
근대와 현대의 이정표이며,
회화를 통해 정신분석학의 묘경을 탐구한
미술의 프로이트라 할 수 있습니다.

비이성적인 것, 비합리적인 것으로의 문을 연 그는
곧장 광기로 치달았을 내밀한 정신적 모순들과 신경증을
예술로 승화시킨, 그저 미치광이나 괴짜, 기인이라고
정의 내릴 수 없는 천재였다.

* 그의 인생

달리는 1904년 5월에 프랑스에 접한 스페인 국경지대에 태어났다.
아버지는 중산계층의 변호사 겸 공증인으로 매우 엄격한 교육을 했다.
달리는 1916년 미술학교에 다녔으며
이듬해 아버지는 집에다 달리의 목탄 드로잉 작품을 전시해주었고
1919년에는 피게르에 있는 극장에서 첫번째 공개전을 열어주었다.

1921년 달리가 16세 되던 해에 어머니가 유방암으로 사망하자
달리는 “인생에 가장 큰 폭풍을 맞았다. 어머니를 숭배했다.
내 영혼의 피할 수 없는 결점을 보이지 않게 해주던 존재를 잃어버렸다는
상실감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고 술회했다.
아버지는 엄마의 여동생과 재혼하고
달리는 이모 역시 너무 사랑했기 때문에 아버지의 재혼을 받아들였다.

1922년 마드리드로 이주한 그는 생 페르난도 예술대학에서 공부하면서
긴머리와 구렛나루, 펄럭이는 코트, 짧은 바지 등 괴짜 행세를 하고 다녔으나
큐비즘을 시도하면서 동급생중 가장 큰 주목을 받아냈다.

다다이즘을 시도하면서 그의 화풍에 절대적인 영향을 받게됐다.
같은 해 처음으로 파리에간 달리는 피카소를 만나게 된다.
이미 달리에 대해 좋은 평가를 들었던 피카소는
미로와 함께 달리의 독자적인 화풍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달리는 가장 학구적인 고전풍에서부터
아방가르데의 최첨단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범주의 작품을 탄생시켰다.
바르셀로나 전시회에서 비평가들로부터
찬사와 곤혹스러운 논쟁의 대상이 되는 등 엄청난 시선을 한몸에 받게된다.

이때부터 콧수염을 기르기 시작,
자신의 아이콘으로 만들고
1929년에는 대본을 쓰면서 초현실주의 감독 루이스 버넬과 함께
공동작업을 하기도 한다.
이후 나중에 아내로 맞이하게 되는 갈라를 운명적으로 만나
1929년부터 함께 살기 시작해 1934년에 결혼한다.

2차세계대전 이후 달리는 갈라와 함께 미국으로 건너와
8년을 보내면서 각종 전시회를 성공적으로 마치자
Avida Dollars (돈 욕심 많은 사람)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그 후, 카톨릭교의 예식을 위해 스페인으로 돌아간다.
1942년에 자서전 ‘살바도르 달리의 비밀인생’을 출판하고,
1949년에는 카탈로니아로 돌아가 남은 여생을 보낸다.

후기로 넘어오면서 달리는 페인팅보다는
다른 이색적인 메디아로 실험하기를 즐겼다.
예술적인 방법으로 레이저사진술(holography),
시각적 착각을 혼합시킨 작품을 남기기도 했다.

앤디 워홀같은 젊은 화가로부터
팝아트에 막강한 영향을 주었다고 칭송받았다.
뿐만 아니라 자연과학과 수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
1950년대의 일부 작품에는 기하학과 순결을 상징하는
코뿔소의 뿔을 구성에 넣었으며 DNA와 4차원 큐브에도 관심을 가졌다.

조각에도 많은 열정을 쏟았으며
극장, 패션, 사진, 주어리 등 여러분야에 능력을 발휘했다.



1960년에는 자신의 고향 피가레에 ‘달리 극장 & 뮤지움’을 짓기 시작했다.
평생의 가장 큰 프로젝트였던 이 사업은 1980년대까지 계속되었다.

1982년 갈라가 생을 마감하면서 달리는 삶에 대한 의욕을 잃고
체내 수분을 서서히 제거하면서 자살시도를 하기도 했다.
갈라를 위해 구입했던 푸볼의 성으로 이사한 그는
나머지 생을 자신의 뮤지움에서 편안한 삶을 살면서 말년을 보냈다.

* 작품세계

달리는 평생을 한 여자를 사랑했다.
25세에 만나 함께 살기 시작한 후 30세에 결혼해
48년간을 함께 그녀와 함께 살았다.
그녀가 세상을 먼저 마감한 후, 7년동안에도 그녀만을 그리워하며
2차례의 자살을 기도하다 1989년에 결국 그녀를 따라 이생을 떠났다.

갈라는 달리보다 열살이나 연상이었으며
처음 만났을 땐 이미 다른 남자의 아내였다.
갈라는 달리의 친구, 모델, 메니저로 달리 곁에 있어주었다.
갈라가 달리와 만난지 3년만인 1932년에 갈라는 이혼을 하고
달리와 1934년 파리에서 결혼을 한다.

달리의 작품에 나오는 여성모델 대부분이 아내다.
그녀의 이름은 갈라.









On Dream Caused by the Flight of a Bee
around a Pomegranate a Second Before Awakening(1944)


The dream (1937)



기억의 영속성 (The persistence of memory, 1931)

녹아가는 시계들은 초현실주의 시간의 무의미이다


만종 1857



아버지의 초상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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