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北)에서 내몰린 중섭은
남달리 비극적인 한국 근현대사를 겪었다
그러나 창작열은 뜨거웠고
최악의 조건에서도 세계 속의 한국을 꿈꾸었다"
제주도 서귀포에서 한일(韓日) 신시대 공동연구 모임을 끝내고 가까운 이중섭미술관을 들렀다. 한국전쟁이 한창 벌어지고 있던 1951년 원산에서 월남한 이중섭은 서귀포에서 가족과 함께 물질적으로는 엄청나게 어려웠지만 정신적으로는 한없이 행복했던 1년을 지내면서 '서귀포의 환상'과 '섶섬이 보이는 풍경'과 같이 주목할 만한 그림들을 남겼다. 작품 탄생의 현장에서 그림들을 다시 볼 수 있는 것은 소중한 기회다.파리에서 북서쪽으로 30km쯤 올라가면 오베르 시르 와즈(Auvers-sur-Oise)라는 작은 마을이 있다. 빈센트 반 고흐가 삶의 마지막 10주를 불살랐던 현장이다. 마을에 들어서면 고흐의 작업장이었고 자살로 마지막 숨을 거뒀던 다락방이 당시 그대로 남아 있다. 형 빈센트를 천연보호기념물처럼 돌봤던 테오가 형과 함께 나란히 묻혀 있는 흙무덤도 인상적이다.
그러나 이 마을의 보석은 교회다. 그림 같은 교회를 바라다보고 있으면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에 걸려 있는 고흐의 교회 그림이 눈앞의 교회보다 더 선명하게 머릿속에 떠오른다. 고흐의 교회가 현실의 교회보다 더 현실적이다. 이 짜릿한 충격 때문에 파리를 갈 일이 생기면 어김없이 이 마을을 서성거리게 된다. 오베르 시르 와즈는 이런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도록 마을 전체를 한 편의 아름다운 작품처럼 세련되게 연출하고 있다.
1951년 제주도는 복잡했다. 한국전쟁은 50년 10월 중국의 참전으로 38선에서 전선이 교착된 채 장기전으로 접어들었다. 그러나 48년 좌우가 대규모로 충돌한 4·3사건의 비극을 겪은 제주도는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아픈 기억을 더해 갔다. 한편 51년 1·4후퇴와 함께 제주도민의 반에 가까운 15만의 피란민이 제주를 찾았다. 수많은 말 못할 사연들이 섬마을을 떠돌 수밖에 없었다. 이중섭 가족도 그중의 하나였다
피란처 움막에서 내려다보면 떠오르는 '섶섬이 보이는 풍경'은 전란기의 마을 풍경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나 평화스럽다. 그러나 그림 속에서 멀리 보이는 섶섬과 바로 마주한 소남머리는 4·3의 핏빛 어린 추억을 대표하는 곳의 하나다. 가족들과 허기진 배를 달래느라고 게 잡으러 가는 곳이기도 하지만 4·3의 원혼들이 맴도는 곳이기도 한 소남머리 풍경을 이렇게 그리고 있는 이중섭의 마음을 쉽사리 헤아리기는 어렵다.
'서귀포의 환상'은 제목 그대로 평화와 풍요가 꿈을 넘어서서 환상의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그림 한가운데에는 어린아이가 평화롭게 전투기가 아닌 새를 타고 푸른 서귀포 앞바다를 날고 있다. 해안에는 어린아이들이 풍요롭게 먹을 것을 나르거나 한가하게 누워 있다. 이중섭이 1951년 서귀포에서 가족과 함께 지내고 싶었던 꿈과 환상이다.
서귀포의 이중섭 마을 만들기 노력이 '오베르 시르 와즈'의 고흐 마을 만들기를 따라잡으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 이중섭과 고흐는 둘 다 40년 정도의 짧은 세월을 살았다. 고흐에 비해서 이중섭의 삶은 훨씬 더 어려웠다. 남다른 한국 근현대사의 비극을 모두 겪어야 했기 때문이다. 식민지 화가로서 일본 여성과의 결혼은 무척이나 힘들었다. 유복한 집안 출신인 그는 사회주의 북한에서 살아남기 어려워서 월남한다.
그러나 자본주의 남한의 삶에도 쉽사리 적응할 수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끔찍하게 사랑하는 부인과 두 아들을 경제적인 이유로 일본으로 보내놓고 괴로움의 나날을 보냈다. 그의 가족 상봉 프로젝트는 한국 근현대사의 비극 풀기만큼이나 어려웠다. 그러나 하루를 우동과 간장 한 끼로 때우면서도 그의 창작열은 뜨거웠다.
그는 아내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런 말을 남기고 있다. "나는 한국인으로서 한국의 모든 것을 세계 속에 올바르게, 당당하게 표현하지 않으면 안 되오…. 세계의 사람들은 한국 사람들이 최악의 조건하에서 생활해 온 표현, 올바른 방향의 외침을 보고 싶어 하고 듣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고 있소." 반세기가 지난 오늘에라도 그의 간절한 소망을 풀어주려면 무엇보다도 요즘 유행하는 '영어 하기' 수준의 세계화뿐만 아니라 이중섭 같은 안목의 세계화가 절실하게 필요하다.
이중섭이 영양실조의 행려병자 모습으로 우리를 떠난 지 이미 반세기가 흘렀다. '서귀포의 환상'에서 그려진 풍요는 더 이상 환상이 아니다. 어린아이들처럼 합심해서 거두면 충분히 이룰 수 있는 꿈으로 눈앞에 다가왔다. 한국은 성공국가와 실패국가의 마지막 갈림길에 서 있다. 한반도의 근현대사는 이중섭의 삶처럼 기구했다. 세계 어느나라보다도 힘들게 문명개화, 망국식민화, 분단냉전화, 그리고 21세기의 복합화의 길을 걸어야 했지만 그가 평생 즐겨 그리던 소 같은 강인함으로 오늘에 이르렀다. 마지막 순간에 자중지란으로 굴러 떨어지지만 않는다면 세계가 부럽게 바라다보는 속에 새를 타고 우주를 날게 될 것이다.